[뉴스] “韓, 소형 재사용로켓 개발하면 새 시장 선점할 것”
일론 머스크가 극찬한 로켓 전문가 패트릭 스티넌 대표
<15년 전 한 번 쏘아올린 로켓을 다시 발사하는 ‘재사용로켓’ 개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큰 화제를 모은 과학소설 ‘로켓컴퍼니’의 저자이자 미국항공우주학회 선임회원인 패트릭 스티넌 스티넌&스티넌 법률사무소 대표가 14일 서울대에서 재사용로켓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현재 우주 발사 시장은 대형 재사용로켓과 소형 로켓의 경쟁구도입니다. 한국은 우주개발 후발 주자이긴 하지만 ‘소형 재사용로켓’을 개발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겁니다.”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개발사업 운영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과학소설 ‘로켓컴퍼니’의 저자이자 미국항공우주학회 선임회원인 패트릭 스티넌 스티넌&스티넌 법률사무소 대표는 이달 말 한국형발사체(KSLV-Ⅱ) ‘누리호’의 엔진 검증용 시험발사체 발사를 앞둔 한국에 이처럼 조언했다. 누리호는 한국이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다. 서울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AIST 등의 초청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스티넌 대표를 14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현재 항우연은 재사용로켓 개발을 위한 기술 검토를 진행 중이다. 스티넌 대표는 “대형 재사용로켓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며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지만, 기업들이 너도나도 재사용로켓을 내놓게 되면 막대한 투자 비용에 비해 충분한 이윤을 남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사용이 불가능한 일반 소형 로켓의 경우도 개발 비용이 적어 일반 대형 로켓보다는 경제적이지만 대형 재사용로켓과 비교하면 비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저궤도 기준 스페이스X의 재사용로켓 ‘팰컨9’의 발사비용은 ㎏당 2700달러인 반면, 벤처기업 로켓랩의 소형로켓 ‘일렉트론’은 ㎏당 2만2000달러 수준이다. 스티넌 대표가 앞으로는 소형 재사용로켓이 유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로켓컴퍼니는 7명의 백만장자가 1조 원을 투자해 우주개발기업 AM&M을 설립하고 재사용로켓 ‘DH-1’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민간 우주개발 시나리오다. 이 소설은 2003년 인터넷에 연재될 당시부터 민간 우주개발 선구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머스크를 비롯한 존 카맥 아마딜로에어로스페이스 창립자, 피터 디아만디스 엑스프라이즈재단 설립자 등은 스티넌 대표와 e메일을 자주 주고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티넌 대표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재사용로켓은 소설 속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됐다”며 “우주개발로 돈을 버는 시대는 이미 열렸다”고 말했다. 2002년 설립 당시부터 재사용로켓을 목표로 했던 스페이스X는 2015년 재사용로켓 ‘팰컨9’을 지상 착륙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 해상 착륙, 회수 로켓 재발사, 로켓 2대 동시 회수 등의 기록을 세웠다.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이끄는 블루오리진 역시 재사용로켓 ‘뉴 셰퍼드’로 민간 우주여행상품을 준비 중이다.
<과학소설 ‘로켓컴퍼니’의 한국 번역판(왼쪽)이 이달 초 출간됐다. 오른쪽은 2005년 미국항공우주학회를 통해 출간된 원서. - 황금가지·미국항공우주학회 제공>
특허 전문 변호사인 스티넌 대표는 한때 로켓을 개발했던 엔지니어였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지만 항공우주회사에서 했던 인턴활동을 계기로 군용 항공기·로켓 개발기업 록히드에 들어가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1982년에는 재사용로켓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직접 벤처기업을 차렸다. 스티넌 대표는 “1960년대부터 재사용로켓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직접 해보려 했다”며 “그러나 기술이 없어 곧 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 재사용로켓 관련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민간 우주개발기업 등에서 특허 변호사로 일했다. 이런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로켓컴퍼니는 당시 우주개발에 막 뛰어든 기업가들에겐 일종의 ‘안내서’나 다름없었다. 머스크는 추천사를 통해 “우주 탐사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도달 비용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스티넌 대표도 “로켓컴퍼니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사례분석 보고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머스크가 화성 식민지 건설을 위해 개발 중인 차세대 재사용로켓 ‘빅 팰컨헤비 로켓(BFR)’은 로켓을 쏘아올린 뒤 1단 로켓은 다시 회수해 반복 발사하고 2단 로켓은 지구저궤도에서 연료를 보충해 재사용하는 방식인데, 이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등장한 아이디어였다. 그는 “머스크가 혹시 내 소설에서 얻은 게 있다면 ‘연료 보충형 재사용로켓’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도 “권리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스티넌 대표는 “언젠가는 인류가 지구를 떠나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면서도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우주 호텔처럼 지구저궤도에 거주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주 개발은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정부가 우주 개발 초기에는 기업이 우주개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반 기술과 연구개발 인프라를 꾸준히 지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켓컴퍼니는 스티넌 대표와 그의 동료인 데이비드 호어 로켓추진개발 프로그램 매니저가 인터넷에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했던 글을 엮은 것으로, 미국항공우주학회를 통해 2005년 정식 출간됐다. 이달 초에는 한국 번역본으로도 출간됐다. 이기주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선임연구원이 기획과 번역을 맡았다. 스티넌 대표는 “지금 소설을 다시 쓴다면 재사용로켓에 수소연료 대신 메탄연료를 쓰는 것으로 내용을 바꾸고 싶다”며 “앞으로는 메탄연료가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 원문 :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view/25132